2018-09-18 content essay 0

품생품사 6화


보교육재단 청소년 인성 콘텐츠 품생품사. 제6화 웹툰과 에세이는 ‘진로에 대한 청소년의 자율’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는 미래와 부모가 그리는 미래 사이의 괴리, 그로 인해 시작되는 통제, 강요, 갈등 속에서 많은 가족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부모와 겪는 갈등 원인의 1순위는 ‘진학 및 진로’때문이며, 고등학생의 경우 학년이 높아질수록 ‘행복하다’는 생각의 비중이 줄어들고 그 원인으로 ‘진로에 대한 불안’을 지목했습니다. 가족의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한 꿈, 혼자서만 꾸는 꿈은 청소년들의 자기효능감 발달을 저해합니다. 무엇보다 부모의 지나친 자율통제는 아이들의 심리적 독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생품사 6화 웹툰 ‘마주 앉아야만 보이는 것들’은 예대 진학을 꿈꾸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한 소년의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진로에 대한 자율성을 획득하고 싶다면, 주장만 내세우기보다는 신뢰와 믿음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근거’와 ‘확신’없는 무조건적인 지지는 청소년에게도 부모에게도 옳은 방향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믿을 만한 딸과 아들’로 다가가 주었을 때, 분명 부모님은 여러분의 꿈을 응원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신뢰를 주고자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긍정적인 경험이 될 것입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처럼 행동의 변화는 곧 내면의 변화로 치환되며, 나의 변화가 상대의 변화를 불러오고 우리 모두의 변화를 불러옵니다.

6화 에세이 ‘들꽃이라도 괜찮아’는 딸과 손녀의 갈등을 바라보는 외활머니가 전하는 가슴 따뜻한 편지입니다. 딸의 유년시절 그녀의 꿈을 지지하는 대신 당신이 원하는 삶을 강요했던 기억을 아파하며, 시간이 지나도 남게 되는 상처의 흔적을 고백합니다. 바라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실은 부자연의 산물이며 기형임에 틀림없는 ‘분재’보다는, 저 들판에서 온전히 자기 힘으로 마음껏 피어난 ‘들꽃’이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진짜 행복’은 사회적 기준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일 것입니다.

로를 정한다는 건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청소년들은 단순히 외적인 화려함에 현혹되어 특정 직업을 꿈꾸기도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적성과 진로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의 만족을 위해 사회적 인식이 높은 직업을 강요합니다. 그렇기에 청소년은 개인의 적성과 선택 기준에 대한 자기검열을, 부모는 자신의 욕심이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지 ‘함께’ 성찰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마주보았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손녀를 생각하는 할머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들꽃이라도 괜찮아

 

김이도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네 마음에 가서 닿을까?
언젠가부터 내 말은, 나의 마음은
너에게 미처 닿기도 전에 튕겨나가 공중에서 그냥 흩어지는구나.
주르륵 흘러 버리는구나.」
.
.
.

연수 어미야,
네가 친정에 들렀다 간 다음날은 네가 머무르던 방에 잠시 앉아 있곤 한다.
반가운 얼굴이 잠시 밝혀 준 자리가 환했던 만큼
빈자리에 남은 그림자 또한 짙어서인가 보다.
지난밤 네가 읽었을지 모를 책을 정리하다가 책상에서 이 쪽지를 발견했다.
진로 문제를 두고 연수와 네 생각이 상당히 달라서,
그리고 그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서
네가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고민의 깊이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흔적을
이 쓰다 만 편지에서 직접 확인하고,
나는 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한동안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라도 순하게 네 말을 따라와 줄 것만 같은 연수가
고개를 저으며 짓는 낯선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네가 적잖은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지금껏 본 적 없던 내 아이의 낯선 얼굴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쓸쓸함을 나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예 본 적도 없던 것처럼 지워 버렸던 너의 낯선 얼굴.
너 자신도 잊었을 그 슬픈 표정이 그예 떠오르고 말았다.

그래, 네가 연수를 생각하는 지금 이 시간들은
내가 너와 함께 겪어 낸 지난 시간들과 퍽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 마음만은,
너의 것이나 나의 것이나 할 것 없이 꼭 닮았다.
내가 너에게 전하지 못한 오래된 미안함을 담아
네가 쓰다 만 편지를 이어 적어본다.
한 때 나는 헛된 바람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네게 온전히 전해져 이식되어야 하고,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던 것처럼 네 안에 잘 뿌리내렸으면 하는 것.
너는 내가 정성을 다해 그린 지도만 보고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면 세상 속에서 넌 안전하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리 지혜로운 생각이 아니라는 걸 그 때는 몰랐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주려던 것은 언제나 나의 최선이었고
나의 선택은 항상 너를 위한 것이니까,
다름 아닌, 너를 더 안전한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니까
너를 향한 내 진심에 뭔가 다른 게 섞여 있을 거라고는 나조차도 의심할 수 없었다.
그 바람에는 내 욕심이 더 많이 섞여 있는 줄 정말 몰랐었다.
몰랐기 때문에 그 후로도 오래오래 어리석었었다.

연수 어미야,
....선영아,
불광동 집 마당에 있던 화분들을 혹시 기억하니?
심미안이 남달랐던 네 아버지가 가꾸시던 그 화려한 분재 말이다.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의 섬세한 솜씨에 감탄했었다.
나는 그 마당이 자꾸 생각이 난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분재뿐 아니라 네가 특히 좋아하던 작은 들꽃들도 많았지.
너는 분재를 ‘미니 나무’라고 부르며 신기하다 했었다.
가꾸는 사람이 맘속에 정한 그림대로만, 바라는 형태대로만 자라야 해서
맘껏 제 힘닿는 곳까지 자유롭게 팔을 뻗어본 적 없는 미니 나무.
분명 살아있는 자연이면서도 자연스럽지 못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극한 보살핌과 정성을 받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분재들은
네 아버지의 자랑이자 기쁨이었다.
네가 나의 자랑이면서 기쁨인 것처럼.
너는 내가 네 앞에 내민 지도를 따라
너를 두고 바란 나의 그림대로 아름답고 훌륭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들꽃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나는 차츰 두려워졌다.
너도 혹시 아버지의 분재들처럼,
네가 뻗어가고 싶은 데로는 팔을 뻗어보지도 못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보다 더 맘에 걸리는 일은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혹시 네가 그린 너만의 지도가 따로 있는지
너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정한 길과 네가 남몰래 꿈꾸던 길이 같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서로 생각한 방향이 달랐는데 네가 생각을 바꿔
내가 가리킨 쪽으로 몸을 돌려야만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단 한 번, 너는 처음 보는 표정을 한 적이 있었어.
네가 친한 친구들을 따라 문과를 지원했을 때였어.
담임 선생님께서 확인을 위해서 먼저 연락을 주셨는데
나는 네게 묻지도 않고 이과 지원으로 정정 부탁 드렸었다.
너는 특히 과학과 성적이 우수했으니까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었고
지금은 너희 부부 모두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친구들과 반이 갈라진 걸 뒤늦게 알게 된 네 표정이 심상치 않았었다.
총명함으로 가득한 네 눈동자가 텅 비어서, 정말 텅 빈 눈을 해서
입을 다물었었지. 어떤 원망도 없었지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 했어.
하지만 나는 그 때도 묻지 않았다.
묻지를 않았으니 너의 대답을, 너를,
내가 기다려 준 기억이 있을 리도 없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게 제일 안타깝다.
네가 친구와 문과에서 공부를 하다가 공부가 맞지 않아서
결국 전과를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문과 공부에도 소질이 있었을 수도 있다.
어떤 길을 택하든 내가 조금 기다려 줬다면 스스로 잘 헤쳐 나갔을 텐데
나는 기다려 주지 못했었다.

연수가 너희 부부와 같은 전공을 선택해서
네가 걸어온 길을 지도 삼아 좀 더 안전한 길을 걷길 바라는 네 마음, 이해한다.
좁은 골목과 골목, 발에 걸리는 돌부리까지 얼마나 자세하게 일러둔 지도일지,
아마 내가 그린 그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뚜렷한 밑그림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수가 네가 미리 그린 그림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지금 미리 절망하듯 예정된 실패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다.
스스로 단단해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낭비가 아니니까.
연수가 가진 지도는 자신이 뻗어가고 싶은 곳을 향한 지도이니까
길을 가는 내내 연수는 즐거울 거야.

선영아,
나는 네가 틀렸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다.
나의 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고백도 아니다.
다만,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들어서더라도
연수는 괜찮을 것이라는 걸 잊지 말기 바란다.
네가 기다려주면,
네가 에너지를 가지고 연수를 기다릴 수만 있다면
분재가 되었든 야생화가 되었든 아이는 망하지 않아. 망쳐지지 않아.
네가 결국 단단하게 잘 자란 것처럼.
너는 마당 여기저기 피어있던 들꽃들을 좋아했었다.
일부러 앉아 한참 찾아도 보이지 않던 네 잎 달린 토끼풀을
어쩌다 한 번은 걸어가다가 한눈에 우연히 발견했던 적이 있었는데
네 잎 토끼풀을 못 알아보는 너를 위해 토끼풀이 대신 너를 찾아왔다고
깡충깡충 뛰며 반가워했었어.
정돈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문득문득 예상 못한 기쁨을 안겨주는 들꽃도 좋다.
그래, 분재도 아름답고 야생화도 아름다워.
부모가 자식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본 듯이 그린 지도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시간,
넘어질 시간,
그리고 일어나서 추스를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다.
그리고 네가 이미 가 본 길이라 해도 그건 과거의 시간일 뿐
연수가 걸어갈 미래는 또 어떻게 달라질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 네가 그린 지도를 연수가 선택하지 않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안타까움에 몸이 상하도록 절망하지 말고
너의 기다림을,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한 적극적 기다림을 준비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