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7 content essay 1

품생품사 5화

보교육재단 청소년 인성 콘텐츠 품생품사. 제5화의 키워드는 ‘자기인정’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한 두 곳쯤 못나거나 부족한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그러한 단점을 타인을 통해, 혹은 특정한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깨닫습니다. 이제껏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못난 점을 그대로 인정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외면·부정하거나 감추고자 합니다.

생품사 5화에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못난 모습, 긍정하기 어려웠던 부분까지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혹자는 타인에게 인정·사랑받기 위해서 단점은 감추고 나를 포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결핍까지 인정하고 발전하려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비로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5화 웹툰의 주인공은 변화에 발맞추지 않고 늘 하던 방식을 고수하는 무성의한 생계형 교사입니다. 문득 알아채버린 학생들의 부정적 평가. 이를 받아들이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교사의 모습을 통해,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인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합니다. 에세이는 롤모델이 되는 또래 친구의 취향, 행동양식 등을 카피하며 부족한 자존감을 숨기려 했던 친구를 소개합니다. 아직 못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라도 참된 ‘나’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연진이를 보며, 여러분 또한 스스로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연습을 해보길 기대합니다.

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동경하는 사람들 또한 처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를 뚜렷이 하고 그 방향을 따라 열심히 걷다보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나의 못난 면모로부터 피하고 숨는 대신 똑바로 마주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 보는 건 어떨까요? “괜찮아. 알았으니까 됐어. 고쳐나가면 돼.”라고 말이죠. 변화는 자신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파로데이아

 

김이도

 

 

 

 

채현이의 이야기


나, 이채현. 열여덟 살이다.

새 학년 반 배정을 확인하고 고민이 생겼다. 우리 반에 이연진이 있다! 문제를 풀다가도 한숨이 자꾸 나온다.

“뭐가 문제니?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
그냥 이번 기회에 탁 털고 화해해. 솔직히 너희 꼭 쌍둥이 같았었는데.”

과외 선생님의 말씀.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연진이 소개로 지금의 과외 선생님을 만나 수업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게 선생님 말씀대로 꼭 그렇게 쉬운 문제만은 아니다.
연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별자리가 같은 것도 아니고 혈액형이 같은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 장난과 놀이에 있어서만은 누구보다 죽과 장이 잘 맞았다. 특히 노래방에서 우리는 환상의 2인조였다.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약속한 듯이 연진이가 뛰어나와 무대의 완성도를 높여줬다. 2박 3일 합숙하며 연습해도 나올까 말까 한 완벽한 호흡이었다. 물론 매번 즉흥 공연이었다. 연진이의 선곡도 내 맘에 쏙 들어서 나도 모르게 흔들던 탬버린을 던져 버리고 아예 뛰어나가 춤을 맞춰 주곤 했다. 그렇지만 연진이와 특별히 더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서로 취향이 꽤 비슷해서 열광하는 대상이 많이 겹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게 좀 문제였다. 겹쳐도 솔직히 너무 심하게 겹쳤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미묘한 감정들로 맘이 편치 않았다. 그 불편함마저 차츰 불쾌감으로 변해가던 때였다.

“채현아, 너 그 운동화 말야. 연진이가 페북에 올렸더라.”
“뭐라고 올렸는데? 헐! 혹시 연진이도 이거 신어?”
“응. 색깔도 똑같더라.”
“또 겹쳐, 또..”
“......음.. 그런데 너, 페북 한 번 들어가 봐.”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연진이와 반이 갈라졌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지만 입시를 앞두고 바빠진 우리는 같은 반일 때처럼 함께 어울릴 기회는 거의 없었다. 대신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오듯 친구들은 내게 부지런히 연진이 소식을 날라다 주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내내 길렀던 머리카락을 단발로 한 며칠 후에는 연진이가 단발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구입한 혼혈렌즈도 연진이의 새 렌즈의 색깔과 비슷하다고 했다. 결국 연진이와 급식실에서 딱 마주쳤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앞머리를 무겁게 내린 단발머리를 하고 같은 색깔의 혼혈렌즈를 착용한 연진이는 마치 도플갱어 같았다. 그 뒤에도 가끔 친구들이 물어다 준 연진이의 소식들을 주워 먹고, 맘 속 불쾌함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성아가 운동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중학교 졸업을 며칠 앞둔 봄방학이었다. 연진이가 올린 운동화 사진 아래에 달린 댓글 중에는 기분 나쁜 글들이 꽤 있었다. 이연진을 다른 반 아이가 자꾸 따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따라쟁이는 바로 나를 가리키는 게 거의 확실했다. 그런데 연진이는 그 어이없는 댓글에 반박 댓글은커녕 일일이 귀여운 이모티콘을 달아주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그룹의 활동 시기에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기 위해서 트위터만을, 그마저도 한시적으로만 해왔던 나는 그 운동화 사진에 달린 댓글을 보고나서 바로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대유행인 상품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기성 상품이란 게 나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므로 필연적으로 누군가와 겹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혼자 예민하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연히 겹쳤다고 하더라도 기분이 썩 좋을 리 없는 없다. 심지어 내가 먼저 선택한 걸 나중에 뒤늦게 선택했으면서 마치 내가 자기를 따라하는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달려가서 다투기엔 저능아 인증이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는 너무 짜증이 났다. 나도 전체공개로 운동화 사진을 올렸다. 구입 날짜가 적힌 영수증도 함께. 유치하지만 해시태그로 분풀이를 해댔다.

#카피캣 #고양이도 아닌데 살금살금
#내 방에 cctv #주객전도 왕짜증

글을 남기고 아예 앱을 지워버렸다. 사실 나는 감정의 기복도 별로 없지만 감정에 따라 즉각적으로 행동하기에는 솔직히 너무 게으른 성격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적된 찜찜함이 그만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론 페이스북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 포스트에 누군가가 어떤 댓글을 남겼는지 나는 모른다. 애써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맞겠다.
성아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연진이도 같은 학교에 배정되었다. 서로 전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칠 때도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도 자연스러웠다. 친구들도 더 이상 연진이 소식을 물어오지 않았다. 먹이를 주지 않았더니 불쾌했던 마음은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같은 반이 된다니 이건 좀 걱정이 된다.

“쌤, 전 아무래도 올해부터 아싸될 거 같아요.”
“아싸가 뭐야?”
“아웃사이더요.”
“아웃사이더든 뭐든 네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거면 별 상관없지 않을까?
남들한테 밀려서 원하지 않는 상태에 놓이는 게 아니라면.”
“같은 반 친구들 중에는 연진이랑 친한 아이도 있어요. 사실 그 애는 저보다 연진이랑 더 친해요. 이제 모두 같은 반이 되었는데 함께 어울릴 수밖에 없겠죠. 휴, 복잡해요. 연진이랑 말 안한 지 1년이 넘었는데.”
“너는 아직 연진이한테 화가 안 풀렸어?”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전 좋은 감정도 특별히 나쁜 감정도 없는 지금이 좋아요. 어색하게 손을 내밀고 지난 흑역사를 다시 꺼내서 되돌아보고 화해를 해야 하는 게 닭살이에요.”
“그래, 어떤 감정인지 알겠다. 민망하고 막 그렇겠구나. 네 말도 맞아.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면 좋지만 네가 가진 에너지를 전부 쏟아서 친목에만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어떤 게 네가 더 견딜만한지 생각해 봐.”
“네.”
“그런데 채현아,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냥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만큼 떠나 정말 확실하게 취향이 맞아서 호흡이 척척 맞는 친구를 만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런 의미에서 너랑 연진이는 운이 좋은 아이들일 지도 몰라. 너는 화를 낼지 모르지만 너희는 꼭 영혼의 쌍둥이처럼 닮았거든. 그거 귀한 인연이 아닐까? 물론 내 생각일 뿐이야.”

과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뜬금없이 노래방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위에도 적었듯 난 행동하는 젊음이기엔 너무 게으른 아이다. 수학 학원에 들렀다가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연진이는 내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수행평가를 할 때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와 같은 조가 되었다. 아직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둘만 남겨지는 상황만 없다면 이대로 시간이 흘러, 무난하게 2학년이 지나갈 것만 같다
........고 잠시 방심했던 것 같다.

미술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대학 때 농촌 봉사를 가셔서 재래식 화장실에서 겪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너무너무 웃긴 이야기인데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진지했다. 그 진지한 표정까지도 웃겨서 나도 모르게 빵 터져버렸다. 성아도 선생님도 다른 아이들도 황당해 하면서 나를 바라보는데 몸을 흔들며 웃다가 연진이의 어깨도 마구 흔들리는 걸 봤다.
진지한 수업 분위기를 해친 자, 두 명.
연진이와 나는 미술실 청소를 하게 되고야 만 것이다. 청소를 하는 동안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선생님께 청소 검사를 마치고 가는 길에 연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채현아. 너 워너블이야?”
“아니, 나 아미야.”
“다행이네, 그래도 안 겹치는 것도 있어.”

사실 나의 최애는 BTS지만 차애가 워너원인데..

“노래방 갈래?”
“나, 차애가 BTS야. 안무 다 알아.”

아, 이렇게 갑작스런 유흥은 손발이 오그라들수록 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행동력이 발달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연진이는 나랑 달리 관찰력도 뛰어나고 뭔가 기민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괜찮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데 같은 반이 된 열여덟 살 연진이는 이제 도플갱어 같아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이렇게 다시 환상의 듀오가 재결성 되었다.
갑작스런 컴백을 친구들은 열렬히 환영해 오겠지? 부담스럽게..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참, 다행.


연진이의 이야기


2001년, 새천년이 시작되고 이듬해 태어난 나는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태어나자마자 1살이 되는 우리의 나이 계산법 덕분에 2010년엔 10살, 2020년에는 20살이 되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새천년의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듯 근사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런데 나와 같은 자부심을 가진 아이들이 전국에 최소 55만 명.

"세상에 너 같은 애 많고 많아."

남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나에 대한 평가를 100% 수긍하기도 싫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용기도 없다. 그래, 인정. 세상에 나 같은 아이 많고 많다. 하지만 이상하다. 나 같은 애가 그리 많고 많다면 내 맘과 꼭 같은, 내 편이 되어줄 사람 역시 많고 많을 텐데 왜 나는 이렇게 자주 외로워지는 걸까? 나에 대해서 잘 아는 듯 쉽게 하는 말씀들을 잘 들어보면 때로 반은 맞고, 또 나머지 반은 틀리기 일쑤다. 그래서 어렵다. 그래도 청진기를 대어본 듯 나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어른이 되면, 나이 어린 아이들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알 수 있는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걸까? 아니면 복잡한 문제를 한 번에 쉽게 풀 수 있는 무적의 만능열쇠라도 생기게 되는 걸까? 그런데 만약 그런 열쇠가 진짜 있다면 지금 한 번만 미리 빌려 쓰고 싶다.

친구들은 채현이가 나와 많이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채현이는 나와 전혀 닮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내가 아는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그게 난 좋았다. 그리고 많이 부러웠다. 그래서 채현이와 닮고 싶었나보다. 내가 볼 때 채현이는 꼭 뱀파이어 같다. 수백 년 동안 같은 삶을 반복해 와서 이제 세상일엔 흥미가 전혀 없는 뱀파이어 말이다. 좋게 말하면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매사 의욕이 없어 보일 지경이다. 그리고 그 애가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아서 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항상 대세를 비껴가는 선택을 한다. 그래도 채현이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나와 특히 다른 부분이면서 내가 그 애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인데, 일기를 쓰면서 나에 대해서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은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것. 그래서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한 훌륭한 일을 직접 해내지 못할 바엔 대세를 따라 그 안에 숨는 게 덜 불안하고, 덜 외로울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일기를 쓰지 않는 친구들도 이 비법만은 모두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 다 아는 비밀의 해결책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라고 믿어왔다, 너무 오래.

그런데 채현이는 달랐다.

아니, 채현이와 내가 비슷한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노래와 예능 프로그램은 비슷했다. 매사가 귀찮은 채현이도 몇 가지 열광하는 대상이 있는데 그게 딱 겹쳤다. 세상 모든 일에 다 참견하는 아이와 의견이 일치하는 때보다 매사에 관심이 없는 아이가 관심 있는 유일한 대상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한다는 게 좀 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대세를 따르는 것이 훨씬 편안했던 내 생각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된 것이 아마 이때였던 같다.

이 작은 변화의 시작은 나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처음에는 채현이의 선택들을 그냥 지켜보다가 점점 맞장구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채현이의 선택들을 따라서 하게 되었다. 아니, 의식적으로 내가 채현이를 따라했던 것이다. 그게 좋아보였으니까. 친구들은 내가 채현이를 따라하는 중인 걸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우리가 서로 비슷한 데가 있다고 말했었다. 시간이 흐르자 엉뚱하게도 사람들은 가끔 채현이가 날 닮은 것으로, 심지어 채현이가 날 따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채현이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고, 나는 다방면으로 좀 수다스러운 편이었으니까. 3학년 때는 채현이와 반이 갈라졌다. 서로 어울릴 시간이 없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채현이 소식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산 운동화는 사실 내가 산 게 아니었다. 막내 이모가 졸업 선물로 보내주신 건데 별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같은 운동화를 채현이가 신은 걸 보았다. 이번엔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랬을까? 채현이가 신은 걸 보자마자 운동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새 운동화가 예쁘다는, 영혼 없는 친교 댓글이 몇 개 달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곧 채현이도 같은 운동화를 ‘따라’ 신고 다닌다는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 댓글에 ‘좋아요’를 누를까 ‘웃겨요’를 누를까 고민하다가 활짝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을 댓글 대신 달았다. 며칠 후에, 페이스북을 하지 않던 채현이가 올린 단 하나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숨겨 두었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부끄러워서 일기를 쓰기도 싫었다. 하지만 이 부끄러움으로 인해 나는 가까스로 나와 마주설 수 있었다. 채현이가 항변하듯 남긴 짧은 포스팅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후로도 꽤 오래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피하는 요령을 터득하느라 이리저리로 옮겨 다니며 바보짓을 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채현이를 따라하지 않는다. 아니,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장을 받듯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대신 더 자주 나에게 질문을 하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대세를 따라야만 안정되는 아이에서 이제 벗어났다. 하지만 나름의 독특한 생각이나 주관이 뚜렷한 아이도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 가진 독특함이란 아무리 흉내 내봐도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는 다른 사람의 입과 눈 대신 나를 보고 있으니까. 뭐든 되겠지, 난. 그래, 난 내가 되겠지. 난 나로 살면 된다.

2001년에 태어난 나는 2018년 올해 18살이 되었다. 새천년의 시간이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착각을 나는 아직 즐기고 있다. 2001년에 태어난 아가들은 약 55만 명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근사한 이 기분을 꼭 55만 분의 1로 나눈 만큼만 가져야 옳은 것일까? 아니,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만능열쇠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내일은 용기를 내서 꼭 채현이에게 말을 먼저 건네고 싶다.
음.
아..
과연?
제발..